상생문화
[대전일보 2006-04-01 11:33]
저녁에 연구실에서 창문을 내다 보면 내가 사는 중구 어디를 봐도 빨간 십자가(十字架)가 사방에 보인다. 서양인지 동양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 같은 야경이다. 십자가가 너무 많아 한국이 서구의 독일이나 프랑스 그리고 미국보다도 교회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은 천주교 개신교뿐이 아닌 것 같다. 조선후기에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보다 훨씬 먼저 한국땅에 뿌리를 내린 불교의 사찰이 더 많은 것 같다. 내 연구실 남쪽 창문으로 보면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 보문산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정도다. 아마 인도나 중국, 일본 그 어느 나라보다 적지 않을 듯 싶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이렇게 많은 교회와 사원들이 나란히 서서 공존하느냐는 점이다.
비단 교회와 사원만이 아니다. 내가 연구원으로 있는 상생문화연구소를 지나면 뒷골목에 卍 자가 달린 집이 있다. 무당이 굿을 하는 집이라고 한다. 그런 곳도 상당한 것 같다.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봤다. 이외에도 대종교, 천도교, 원불교, 이슬람교 등 한국은 없는 종교가 없는 것 같다. 마치 세계 종교 박물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해 보니 한국의 종교에서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났다. 그것은 한국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가족간에도 종교가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나와 같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박사들에게 물어 봤더니, 누구는 개신교 신자인데 아내는 불교를 믿고 누구는 가톨릭 신자인데 아내는 개신교를 신앙한다고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는 온 세계가 종교전쟁에 휩싸여 가는 양상인데 이 나라 한국만 그 다양한 종교들간에 갈등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연유는 어디 있을까? 내 단견으로는 한국민족의 상생문화가 아닌가 싶다. 상생이란 ‘남이 잘 되어 그 덕으로 나도 잘 되며 서로 잘 되게 된다’는 실천 이념이다. 증산도에서는 상생을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환경 파괴, 민족문제, 경제문제 등 모든 갈등 구조를 풀어 낼 수 있는 최선의 해답’으로 보고 있다.
어찌보면 한민족이 민족전통을 유지하며 유구한 역사를 구가한 것도 삼성조(환인, 환웅, 단군)시대부터 배워 온 상생지심(相生之心)으로 삶을 꾸려 온 까닭이 아닌가 싶다.
빅터 아크닌<증산도사상연구소 연구원·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