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죽음학회 최준식 교수의 사후세계 체험기
“그들은 강 저편에서 ‘돌아가라’는 계시를 들었다”
신동아 2005.07
- 죽음 뒤 세계는 존재하는가. 인간의 영혼은 소멸하는가. 먹고 사느라 바쁜 사람들에겐 부질없는 질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사후세계 체험담을 듣노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자”고 갈파하는 한국죽음학회 최준식 교수의 ‘근사(近死) 체험’ 연구.
세계적인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1944년 초 심근경색으로 의식불명이 됐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목숨을 지탱하며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융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다.
그는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래쪽엔 새파란 빛 가운데 지구가 떠 있고, 거기엔 감청색 바다와 대륙이 보였다. 발 아래 저쪽 먼 곳에 실론 섬이 있고 앞쪽은 인도였다. 시야에 지구 전체가 들어오진 않았지만, 지구의 형체는 확실히 보였다. 그 윤곽은 푸른빛이었다.
그가 방향을 돌리려 하자 뭔가가 시야로 들어왔다. 운석과 같은 새까만 돌덩이가 우주공간을 떠다니고 있었다. 돌덩이 한가운데에는 힌두교 예배당이 있었다. 바위 입구로 들어선 순간, 그의 머릿속에 삶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 모든 사건이 그때껏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왔음을 불현듯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의식을 되찾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를 줄곧 지켜본 간호사는 “의식을 잃은 융이 밝은 빛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1944년 우주선 아폴로호(號)가 찍은 지구 사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융은 생사의 기로에서 이미 푸른 색으로 빛나는 지구를 본 것이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세상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이 많다. 특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이들이 털어놓는 ‘죽음의 이미지 체험’이 그렇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융은 새파란 지구를 봤고, 전쟁터의 부상병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죽은 조상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근사(近死) 체험’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 세상에 적지 않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는가. 사후생(死後生)이 있다면 우리는 죽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우리 사회에 ‘죽음’의 화두를 던진 인물이 있다. 6월4일 동료 교수 및 전문가 20여 명과 함께 한국죽음학회를 창립한 이화여대 최준식(崔俊植·49) 교수(한국학)다.
“근사 체험(과거엔 ‘임사(臨死) 체험’이라고 표현했으나, 최 교수는 ‘Near Death Experience’를 ‘근사 체험’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 연구를 통해 죽음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그의 문제 제기는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한국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하다.
“한국 종교계야말로 구조조정 대상 1순위”라며 야멸찬 독설을 퍼붓는 종교학자, ‘전통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미를 재조명한 한국학자…. 이름 앞에 붙는 다양한 타이틀이 말해주듯 그는 한국 사회의 가려운 곳을 찾아내 일침을 놓곤 했다. 그가 새롭게 천착한 ‘근사 체험을 통한 죽음 연구’는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끈다.
6월8일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재킷을 멋스럽게 걸친, 자유분방해 보이는 첫인상의 최 교수는 인사를 나누면서 대뜸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한국 UFO 조사분석센터 회원증’이었다.
“나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신비한 현상에 관심이 많아요. UFO도 그런 차원에서 관심을 갖게 된 건데, 최근 사람이 줄어 이 조사분석센터가 없어지고 말았어요. 안타깝죠.”
UFO와 근사 체험을 믿는 학자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신념의 바탕엔 어떤 생각이 깔려 있을까.
-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사는 게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아요? 어린 시절부터 죽음 뒤의 생에 관심이 많았어요. ‘소년’ 같은 잡지에서 죽음과 전생에 대한 이야기만 골라 읽었지요. 아마 내가 한국에서 죽음과 관련한 책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대개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여깁니다.
“그게 많은 한국인의 생각입니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을 반영하는 단적인 사례들이에요. 수천 년 동안 내세보다 현세를 중시하는 의식세계를 가져왔기 때문이죠. 내세관이 없는 유교문화의 영향도 있고요.
문제는 한국인이 유달리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죽음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 데서 출발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하며 엄청난 장례비를 들이고, 말기암 환자는 대부분 항암제를 복용하며 혼수상태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죽음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은 엄청난 의료비와 장례비로 귀결되고, 그 부담은 살아남은 자들이 떠안는 거죠.
근사 체험 연구는 죽음과 내세에 대해 적절한 가치관이 형성돼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할 거예요. 죽음 뒤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가 어떤 원리로 움직인다는 걸 알면 우리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겠어요?”
체외이탈, 터널체험
최준식 교수는 “근사 체험자들이 혼수상태에서 목격한 장면들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며 근사 체험은 환각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6월4일 한국죽음학회 창립기념 학술회에서 근사 체험에 대한 논쟁적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근사 체험이라는 신비 체험을 학문의 영역으로 다룰 수 있습니까.
“근사 체험 연구는 19세기 말 스위스의 지질학자 알베르트 하임(1849~1937)이 시작했습니다. 알프스 등반 중 조난을 당한 그가 근사 체험을 한 뒤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등반가, 군인 등의 사례를 모으기 시작한 거죠.
이후 1970년대 미국에서 근사 체험 연구 바람이 불었어요. 정신과 의사 레이먼드 무디는 당시 사망선고를 받고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수집해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이라는 책을 펴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후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큐블러 로스가 근사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사후생’이란 책을 펴냈지요. 이렇게 비슷한 경험이 보고된 사례가 지금까지 수십 만 건에 이릅니다.
그들의 체험은 대부분 ‘영혼의 체외이탈→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터널 체험→저승 도착→빛과의 만남→지나온 생애에 대한 반성적 회고→장벽과의 만남→육체로의 회귀’라는 공통적 패턴을 갖고 있어요. 또 혼수상태에서 근사 체험을 한 사람들이 목격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가 많습니다.”
근사 체험자들은 죽음 뒤 세계의 형태를 도저히 형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혹자는 죽음 뒤의 세상을 묘사하는 일은 “3차원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4차원 세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근사 체험자들은 “저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워 이승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무디가 만난 한 근사 체험자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일주일 동안이나 울었다고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저세상을 보고 난 후 이승에서 살기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밭을 보다
-근사 체험자들이 겪는 공통적 패턴의 경험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려주시죠.
“근사 체험의 첫 단계인 체외이탈은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의 몸이나 주변 사람들을 허공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부상당한 미국 병사들이 이 체험을 많이 한 걸로 보고됐어요.
신기한 것은 이들이 영혼의 상태에서 단순히 전장(戰場)을 내려다본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 미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모친이나 아내를 만났다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이 주장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부상병들이 영혼의 상태로 집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묘사했다는 거예요. 영혼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거든요.
몸을 빠져나온 영혼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른바 ‘터널 체험’이라는 거죠. 터널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에요. 영혼이 터널을 지나면 매우 밝고 영롱한, 새로운 세계에 도착해요. 저승 문턱에 다다른 거죠. 정신의학자 로스도 체외이탈 체험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봤다’고 합니다.
다음 단계는 영적인 안내자인 따뜻한 빛과의 만남이에요. 많은 근사 체험자가 이 빛의 존재와 만나며 안온한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이 빛은 인간의 형상을 띠기도 해요. 부처, 예수, 마리아, 보살, 먼저 죽은 조상의 모습으로 다채롭게 나타났습니다.
빛의 존재를 만난 영혼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게 됩니다. 아주 짧은 시간 삶의 단편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예요. ‘라이프 리뷰(life review)’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지혜를 얻는 거죠.
이승과 저승이 완전히 갈리는 단계가 바로 ‘장벽과의 만남’입니다. 강이나 사막, 바다 앞에서 영혼이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아니다’는 통지를 받는 지점이죠. 통지를 받은 영혼은 다시 육체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가라!” 외치던 할머니
1991년 일본 NHK의 ‘임사 체험’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나카하라 야스시씨의 경험담은 근사 체험 7단계와 거의 일치한다.
나카하라씨는 1988년 4월 급성 췌장염으로 쓰러져 두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의 영혼은 몸을 빠져나와 어둠의 터널을 통과했다. 이윽고 멈춰 선 곳은 분홍색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낯선 연못.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연못 저편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가 있는 쪽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여기 오면 안 된다, 돌아가거라!”고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후 나카하라씨는 갑자기 의식을 회복했다.
-모든 근사 체험자가 이러한 단계를 겪는다고 일반화할 수 있습니까.
“근사 체험자가 모두 이 7단계를 경험하는 건 아니에요. 그중 두세 단계만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나 위에서 설명한 순서대로 경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자살 미수에 그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죽음을 체험한 뒤 아주 캄캄한 곳에서 아무도 자기를 돌보지 않는 듯한 강한 고립감이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도 빛의 존재를 만나는 제4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1982년 미국의 갤럽 조사를 보면 미국 성인 800만명, 즉 20명 중 한 명꼴로 적어도 한 번은 근사 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가한 사람들은 주변의 비웃음을 살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놨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근사 체험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 체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다. 무의식 상태의 환자가 산소결핍 상태에서 겪는 환각이나 꿈이 아니냐는 과학자들의 해석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근사 체험에 관한 연구는 현실 체험설(근사 체험설 자체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주장)과 뇌내 현상설(근사 체험의 이미지는 뇌의 측두엽에서 일어나는 환각작용의 일종이라는 주장)의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죽음의 문턱에 닿았던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경험한 것은 혹시 환상이 아닐까요?
“근사 체험이 환상에서 비롯됐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혼수상태에서 목격한 장면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겠습니까.
예를 들어, 일본의 한 청년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근사 체험을 하고 소생한 뒤 자신이 아주 아름다운 곳에 있는 할머니와 사촌동생을 봤다고 진술했어요. 친척들은 죽은 할머니를 봤다는 사실에는 수긍했지만, 멀쩡히 살아 있는 동생을 봤다고 하니 ‘꿈을 꾼 게 아니냐’고 반문했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몇 시간 뒤 사촌동생이 청년의 오토바이 사고 직전에 숨졌다는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근사 체험이 사실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에요. 환상이 현실과 일치할 확률이 그토록 높을까요?”
-꿈도 현실과 가끔 일치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꿈과 근사 체험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꿈은 일관성이 전혀 없지만, ‘근사 체험’은 95% 정도 비슷한 내용을 갖고, 일관적으로 진행되거든요.”
-LSD(향정신성의약품의 하나) 복용 후 경험하는 환각상태와 근사 체험이 비슷하다는 미국 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있는데요.
“LSD를 복용하면 일상과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1960년대 초반,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리처드 앨버트와 티모시 레어리는 LSD 복용자들이 체험한 환각상태가 티베트의 ‘사자의 서’에 묘사된 죽음 뒤 세계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그러나 두 체험이 비슷하다고 해서 환각과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이 보는 세계가 동일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실제인가, 환각인가
2002년 네덜란드 의료진은 근사 체험과 환각의 관계를 고찰하는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 심장마비 뒤에 의식을 회복한 평균 62세의 환자 344명 중 18%만이 근사 체험을 보고했다는 것. 근사 체험이 뇌의 산소결핍에서 비롯된 환각이라면 모든 환자가 반드시 근사 체험을 했어야 한다는 게 의료진의 논리다. 이 결과는 아직 환각이론이나 현실체험설로 근사 체험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각국에서 보고된 근사 체험이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개신교 신자가 근사 체험 중 마리아의 모습을 본 경우는 없었다. 불교 신자는 ‘빛과의 만남’ 단계에서 흔히 부처의 모습을, 개신교 신자는 주로 예수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근사 체험에서 문화적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장벽과의 만남’ 단계다. 이 단계에서 영혼은 귀환을 할지 혹은 저승으로 갈지를 결정한다. 아랍인에겐 이 장벽이 사막의 형태로 나타나고, 폴리네시아 섬 사람들에겐 넓은 바다의 형태로 나타난다. 일본인의 경우 보통 강을 본다. 한국인의 경우는 아직 연구된 바 없지만 일본인과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른 장면을 목격한다는 것은 결국 근사 체험이 개인의 환각에서 비롯된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해석의 문제예요, 그건. 똑같은 영상을 봐도 문화에 따른 자신의 경험에 비춰 해석을 내리는 거지요. 비슷한 인물이 예수, 마리아, 부처, 어머니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겁니다.”
-근사 체험은 죽어가는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입니까? 죽었다 살아난 모든 사람이 근사 체험을 한 건 아닐 텐데요.
“우리가 꿈을 꿨다고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죠? 비슷한 이치입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 중 근사 체험자의 비율은 10% 정돕니다.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10% 정도 높고요. 평소에 꿈을 잘 기억하고 영적 능력이 강한 사람이 근사 체험을 기억하는 확률도 높습니다.”
-근사 체험이 사후세계의 증거가 된다고 봅니까.
“개인적 견해를 말씀드리죠. 사람들은 잘 안 믿을 테지만, 윤회는 상식입니다. 왜 그것을 믿냐고요? 인도에선 한 명제가 진리임을 증명할 때, 스승의 가르침을 진리라고 말합니다. 스승인 구루(Guru·인도어로 ‘스승’)의 경지를 제자가 감히 이해할 수 없지요. 물론 스승의 가르침의 진위부터 판단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봅시다. 부산에 다녀온 적이 없는 사람은 부산을 다녀온 사람이 설명하는 그곳의 지리를 믿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인도의 수많은 구루가 윤회를 얘기해왔고, 나는 그것을 신뢰합니다.”
종교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자신에 대해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종교적(religious)’인 사람”이라고 했다. 굳이 자신의 종교를 꼽으라면 ‘당신이 곧 브라만’이라고 설파하는 힌두교나 불교적 가치에 공감한다고 했다. 본인의 한정된 경험보다 힌두교 구루의 가르침을 믿는 최 교수의 신념이 ‘비종교적인(unreligious)’인 기자에겐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근사 체험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대체 이세상에서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현상이 얼마나 됩니까. 사랑을 증명해요, 우정을 증명해요? 인문학적 영역은 오히려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더 많습니다. 사후생이 있음을 보여주는 근사 체험도 과학으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모른다’가 아니라 ‘없다’고 부정하려고만 해요.
그렇게 과학과 이성으로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마음이 열린 자에게 진리도 열리는 법입니다. 천동설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이 결코 진리인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못했듯이…. 당시 과학자들은 지동설을 끝까지 부정할 것이 아니라 지동설을 하루빨리 받아들이고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데 관심을 돌렸어야 해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사후생이 존재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일관된 증언을 통해 밝혀졌으니 진위에 대한 논쟁은 그만두고 사후생을 과학적 시각에서 다각도로 접근해야지요. 죽음 뒤 세계에 숨은 신비를 연구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작업입니다.”
최 교수는 근사 체험 연구가 인류의 진화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적 문제라고 말한다. 사후생을 인정하고 죽음 뒤 세계를 연구함으로써 우리 삶을 180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유사 이래 인류는 사후생의 존재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었어요. 어떤 형태로든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맞춰 죽음을 준비했지요. 세계적으로 전파된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교를 보면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교리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이 종교들이 주장하는 사후세계가 해당 교리에 의해 윤색돼 있다는 것이죠. 사후에는 반드시 천당(혹은 극락)이나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불신자(不信者)들이 유황불이 타오르는 음산한 지옥으로 떨어지고, 저승사자가 죄인을 심판하는….
그러나 19세기 과학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종교의 교리와 사후생을 부정하기 시작했어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백안시하기 일쑤였고, 근사 체험자들은 남에게 비웃음을 살까봐 자신의 경험을 쉬쉬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근사 체험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연구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일이에요.”
더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으로 재단하려는 접근에 대해 최 교수는 이처럼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머리와 마음을 닫음으로써 더 큰 진리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근사 체험자들이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평온과 축복으로 여긴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근사 체험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후 겪는 극적 변화가 궁금합니다.
“근사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한 후, 그때까지 탐착(貪着)해오던 물질적 풍요와 주변의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자신들이 보고 온 세계에선 회계사 자격증도, 수억원의 돈도 전혀 필요없으니까요. 이들은 입을 모아 이승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배움과 사랑’이라 말합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사람들은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지혜와 지식을 끊임없이 쌓아나가는 일에 가장 큰 가치를 두게 됩니다.
근사 체험자가 죽음 뒤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전체적인 삶을 통찰할 때 현세가 전부는 아니란 걸 알게 되니까요. 죽음은 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아닌, 영체(psychic body)로 태어나는 것이라 믿게 됩니다. 또한 사후세계에서는 이승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렇기에 근사 체험자에게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영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결국 사후세계는 영체의 세계란 말씀입니까.
“힌두교의 베단차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3개의 몸을 갖고 있어요. 본래의 육체(gross body), 미묘체(subtle body), 그리고 두 몸의 근원이 되는 원인체(causal body)가 그것이죠.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미묘체는 소멸되고, 영체인 원인체는 끝까지 존재합니다.
영적 영역을 믿는 학자들은 영체가 에너지의 파동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영체는 높은 영계(靈界)로 올라갈 수 있도록 진동이 빨라져 빛의 형태에 가까워진다는 주장이죠. 그런데 이렇게 높은 진동수를 가진 영체가 육체라는, 매우 느린 진동수를 가진 사람의 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어려워 인간계와 영계가 소통하기 어렵다는 거지요. 영혼을 파동으로 파악하는 학자들의 설명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사후세계인 영계에는 종교에서 흔히 말하는 지옥과 천당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겠군요.
“아니요, 분명 영계에도 천당과 지옥이 존재할 겁니다.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끼리 모이게 되니까요. 맑고 깨끗한 영혼일수록 그 진동수가 높아 더 높은 곳을 향할 것이고, 범죄자나 악한 마음을 가진 영혼은 진동수가 낮아 낮은 지역에 머물 것입니다. 서로 배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영혼이 모인 영계에선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삶이 지속되겠지만, 악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의 영계는 지옥과 다름없는 세상이겠지요.”
과연 그의 말처럼 영적인 세계가 존재할까. 인간의 육체는 소멸돼도 영혼은 끝까지 존재할까. 문득 2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서 본 12구의 주검이 떠올랐다. 영혼이 떠난 육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표정 없는 얼굴을 지녔다. 시신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목격한 그때부터 기자는 육체에 그 사람만의 향기를 불어넣는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됐다.
‘웰빙’과 ‘웰다잉’
최 교수는 세속적 가치에 천착하는 요즘 한국 사회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오랜 역사 동안 ‘영적(spiritual) 문화’를 간직해온 한국은 산업화란 암초를 만나 물질문명에 더욱 매달리게 됐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현세만이 가치 있다는 편향된 생각을 갖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반면 서양의 패러다임은 달라졌다. 물질문명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영적 세계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근사 체험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됐고, 죽음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논의하는 여러 학회가 생겨났다. 최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를 휩쓰는 웰빙(Well-being·참살이)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며 “주위 사람들과 품위 있게 이별하고, 자신의 생을 차분히 돌아보는 ‘죽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후세계는 존재할까. 그 진위를 알기 위해선 아직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도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달려온 인생 한가운데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우리 삶을 보다 숭고하게 만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