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마음 찾는’ 이기동 명예교수
“지상천국 독자적 사상,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
» 성균관대 대성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기동 명예교수
이색·조식·정약용 서원 등 14곳 순례
<나의 서원 나의 유학> 책 펴내
유학자면서도 사대주의 족쇄 깨고
조선 유학자들 우리 사상 파괴 비판
서원은 인격적 모범 모델 삼아
‘이상적 인간상’ 교육 목표로
주자학 이 땅에 정착시킨 이색
하늘과 인간 차이 없다는 사상 펼쳐
“공자·맹자의 풀리지 않는 사상조차
우리 환단고기를 보면 명쾌해져
중국 정사에서도 수없이 언급함에도
정작 우리 역사학자들은 배타”
성균관대 대학원장과 유교문화연구소장을 지낸 이기동(67) 명예교수가 <나의 서원 나의 유학>(사람의무늬 펴냄)이란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부제를 붙여서다. 목은 이색의 서천 문헌서원, 남명 조식의 김해 산해정, 하서 김인후의 담양 소쇄원, 다산 정약용의 강진 다산초당 등 14곳 순례기다.
저자가 평생 몸담고 후학을 길러낸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를 찾았다. 이 책의 순례지 중 한곳인 성균관 들머리엔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서있다. <논어>에서 딴 글은 ‘한 편에 가서 줄만 서고 두루두루 어울리지 못한 것은 소인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되어 있다. 탕평비 옆엔 하마비가 있다. 성균관과 문묘 일원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인을 모신 곳이어서 ‘말에서 내리라’는 글이 쓰여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이런 경애와 겸허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이런 세태를 먼저 꼬집는다.
서양학문에 변방 밀려나고 수모
“자기보다 착한 사람을 보면 존경하고 칭찬하기보다는 ‘저렇게 착해 빠져서는 세상을 제대로 살 수 없다’고 힐난한다. 자신보다 못된 사람을 봐도 ‘저런 놈들 때문에 나라가 안된다’고 욕을 한다.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란 오직 자기욕심을 자기보다 먼저 채운 사람들뿐이다.”
이 교수는 이런 못된 습성이 성현을 사표로 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세상 기준으로 삼는 오만함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가 현대인에게 잊혀지다시피한 서원을 들고 나온 것은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교육 목표를 잃어버린 채 뿌리 잘린 나무꼴을 면치 못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선시대 국립인 성균관이 공자와 맹자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았다면, 각 지방의 사립학교격인 서원은 그 지방과 인연이 있는 분 중에서 인격적으로 모범이 되는 분을 모델로 모셔 ‘나도 저 분처럼 되자’를 교육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조선이 패망하고 서양 학문이 파죽지세로 달려오면서 유학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그도 대학 때 유학과 한국학을 배우며 서양철학 교수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동양이 서양의 물질과학에 패했다는 근대화 과정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유학은 중국에서 태동했기에 지금도 중국의 아류라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서원만 보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은 크게 짓는 것을 선호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담하게 짓는다고 했다. 그건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힘 자랑하는 것은 천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의 기준 자체를 힘 자랑이 아니라 ‘참된 인간’이나 ‘행복’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유학자이면서 ‘중국 사대주의 동양학’의 족쇄를 깨부순다. 그는 “정몽주·정도전의 스승인 목은 이색이 중국 주자학을 이 땅에 정착시키면서도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으로 이어져
“목은이 한국적인 요소의 핵심으로 든 것은 ‘천인무간(天人無間)’이다. 하늘(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이 일체라는 것이다. 이게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 사상으로 이어졌다. 원래부터 돼지였다는 돼지는 돼지라고 불러도 불만이 없지만, 원래 사람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돼지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를 돼지라고 부르면 화를 낸다. 자기는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자가 바로 한국인이다. 그러니 아줌마한테 아줌마라고 불러도 화를 내는 게 한국인이다. 자기가 원래 하늘이고 부처고 성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을 ‘한’의 민족이라고 하는 것도 원한이 쌓여서가 아니라 ’본래 하늘’인데 이를 회복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지상천국이란 이상향을 일구려는 염원이 정암 조광조, 하서 김인후, 송강 정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천국을 거닐다, 소쇄원-김인후와 유토피아>란 책을 내기도 했는데, 이상향의 꿈을 소쇄원에 담아낸 이야기다. 그는 “북한 공산주의도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내세우지 않느냐”며 “지상천국으로의 회복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유학자이면서도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의 정치인과 정치유학자들이 우리 고유의 역사와 사상을 파괴한 것에 비판적이다.
“한국인들의 약점은 어떤 종교나 사상을 수용해 그것에 빠지면 그 이외의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태종도 세조도 단군시대부터 단군세기와 태백일사 등 책자를 모두 제출하게 해 불태워버렸다. 환단고기엔 자신들이 성인으로 추앙하는 순임금이 단군의 신하로 나오니,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미리 싹을 제거한 거다. 조광조도 주자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소격서를 폐지했다.”
» 성균관 관람을 온 고교생들과 함께 대성전 앞에서 선 이기동 교수
잃어버린 양심 회복 훈련 나서
이 교수는 “그런데도 안동의 임청각에 근세까지 고대사 책자들이 보존돼 왔다”고 한다. 임청각은 독립운동을 위해 팔았던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용 선생의 99칸 자택으로, 일제가 집 가운데로 철도를 건설해버린 곳이다. 그는 “중국 정사에서도 수없이 언급함에도 정작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고대역사와 고유사상를 인정치 않고, ‘너 환빠냐’는 폭력적인 한마디로 배타해버리면 그만”이라며,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고 한다.
“가짜는 주류를 모방하게 마련이다. 진짜의 흉내를 내려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고대사상은 다르다. 독자적이고 고유하다. 조선시대 글씨를 놓고도 실력 있는 서예가들에겐 추사가 쓴 건지 아닌지 금방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듯 그게 중국 고전의 짜깁기인지 고유한 것인지 왜 모르겠는가. 공자, 맹자의 풀리지 않는 사상조차 환단고기를 보면 명쾌해져서 놀라게 된다. <논어>에서 공자가 왜 ‘군자의 나라’ 구이에 가 살고 싶다고 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는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그가 설립해 20년간 고전을 가르친 동인문화원 일도 내려놓고 준비하는 게 있다. 우리 고대신화에서 곰이 21일간 동굴에서 지내다 사람이 된 과정을 본뜬 21일간의 수련프로그램 운영이다. 그는 그 신화의 의미는 ‘인간이 잃어버린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짐승만이 넘치는 세상이니 인간다운 인간을 회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