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집에 오신 조상님들
1996년도 대학교 1학년 추석명절을 맞아 시골 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저의 친척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신앙하는 터라 명절날 모이더라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예배로 제사를 대신하였지요.
증산도에 입도한 후 제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추석 아침 친척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 내내 조상님께 죄송스러워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친척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책을 읽을 때 저는 후손이 되어서 조상님께 제사를 못 지내드려 너무나 죄송하다고, 이 못난 자손들을 용서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간에 각자 개인 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마침 분위기가 조용해졌기에 집중하여 속으로 태을주를 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을주를 읽고 있는데 할아버지 세 분이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저 분들이 우리 조상님들 이시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분은 마당에 서계셨고 또 한분은 마루에 서계셨고 나머지 한분은 안방으로 들어오셔서 앉으셨습니다. 안방으로 들어오신 분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증조할아버지를 뵌 적은 없으나 마루에 서서 화를 내시는 분이 증조할아버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방안에 앉아서 기도하는 친척들을 바라보시며 얼굴까지 붉어지시며 화를 내셨습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제사를 안 지내는 후손들을 꾸짖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당에 서계신 분은 고조할아버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조할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한숨을 쉬시고 혀끝을 차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니 잠시 후 대문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러자 증조할아버지께서 따라 나가셨고, 친할아버지는 좀 더 있다가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가는 모습 같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친척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저는 큰아버지께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증조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얼굴은 동그란 편이고 화를 잘 내시고 무서운 분이셨죠?”
맞다고 대답하시더군요. 그래서 또 물어보았습니다.
“고조할아버지는 인자하신 모습에 키도 크시고 풍채가 좋으시고 청색 도포를 즐겨 입으셨구요?”
큰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떻게 그렇게도 딱 맞게 잘 아냐며 신기해하셨습니다.
이날 체험으로 명절이 되면 조상님들은 자손을 보기 위해 직접 찾아오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제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드리지 못해 너무도 죄송스러웠습니다.
칠성경 읽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각 선영신들
2003년 가을이었습니다. 포교대상자를 위해 칠성경을 100독씩 외우는 성도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인포저널」을 통해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았어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 8명이나 되는 대상자를 위해 칠성경을 100독씩 외우려니까 너무 많은 시간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8명의 포교대상자를 위해 한사람 당 21독씩 외워주기로 마음을 먹고 칠성경을 외웠습니다.
3명째인가 4명째 칠성경을 외우는데 앞에 신단이 보이면서 포교 대상자의 조상님들 8명이 한 줄로 앉아계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미 칠성경을 외워준 대상자의 조상님들은 편안한 모습으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앉아계셨고 그때 외우고 있는 대상자의 조상님은 21독이 아니라 더 외워달라며 저에게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21독은 너무 짧으니 더 외워 달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외울 사람의 조상님들은 언제쯤 내 자손의 이름을 칠성경에 넣어서 외워줄려나, 언제쯤 읽어줄려나 하는 초조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놀라운 광경이어서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하자 오히려 그 모습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날 체험을 통해 한 사람의 자손을 살리기 위해 선영신들이 얼마나 애태우며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월간개벽 2004년 4월호에서 발췌)